초등학교 아이를 둔 학부모님들은 4차산업혁명시대에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또한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를 둔 학부모로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시대의 즉문즉설로 가장 존경 받고 계신 법륜스님의 지혜를 빌려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음은 초등학생 8세, 3세 두 자녀를 엄마의 질문 내용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어머니와 함께 창의적으로 키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면 되느냐? 4차 산업혁명 이란건 세상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시대입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된다고 누구도 말못할 시대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 그러면 할아버지 살던 시대 하고 아들이 살던 시대 하고 손자가 살던 시대가 비슷합니까? 완전히 다릅니까? 비슷합니다. 할아버지가 농사지어 살아왔으면 손자도 농사 지으니까 농사에 대해서 누가 제일 많이 아느냐 하면, 할아버지가 제일 많이 알고 그 다음에 아버지가 그 다음에 아들이 하니까 질서가 저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윤리 도덕도 할아버지가 유교적인 관점에서 제사 지내고 이게 아들도 그대로 지내고 손자도 그대로 지내고 가정생활 결혼하는 생활 이런 것이 다 똑같기 때문에 여긴 저절로 할아버지 밑에 아버지, 아버지 밑에 아들 이렇게 질서가 잡히는 것입니다. 안정된 사회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막 바뀌는 사회는 어떠한 사회냐면 아버지는 농사를 지었는데 아들은 농사를 안 짓고 공장에서 용접을 해요. 그러면 20살 먹은 아들이 공장에서 용접을 하고, 40 먹은 아버지도 도시에 와서 공장에서 용접을 하면 누가 잘할까요? 아들이 잘하겠죠. 그러면 아버지 권위가 설까? 안 설까? 안 섭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농사 지을 때 처럼 아들한테 잔소리를 하니까 먹혀들지가 않는 거에요. 그래서 꼰대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게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시대가 이렇게 빨리 바뀔때는 이게 세대간의 권위가 절대로 설수가 없습니다. 나는 내가 옳다고 말하는데 아이들 입장에선 전혀 안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경상도 전라도 차이가 나고, 한국 사람 일본 사람하고 차이가 났는데, 지금은 같은 20대는 일본 한국도 비슷하고, 전라도 경상도도 비슷하고 같은 집안의 한집에 사는데도 할아버지 세대와 아버지 세대와 손자 세대가 어때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니까 요즘 케이팝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그 막 하면 한국의 2~30대나 일본의 30대, 미국의 30대가 같이 즐깁니다. 그런데 한국의 60대가 즐깁니까? 안 줄기자나요..
그런데, 이게 4차 산업 혁명에 가면 더 빨리 바뀝니다. 그러면 옛날에 사람이 농사 기술 하나만 익혀 놓으면 평생 그걸 갖고 먹고 살면됩니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에도 자기가 용접기술 하나만 있으면 은퇴해도 먹고 사는데 앞으로 이렇게 될까? 안될까요?
안되요. 어떤 기술을 익힌 게 그것을 자기가 가지고 할 수 있는 수명이 5년도 못 가요. 자꾸 바뀌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특정한 기술을 훈련 시키거나 특정한 지식을 하는 것과 전에 대학을 나와 지식을 딱 익혀 그걸 갖고 죽을 때까지 써먹다가 죽는 것입니다. 미국에 유학을 갔다 오면 대학교수가 죽을 때 까지 써 먹었는데, 지금은 유학 갔다와도 써 먹을 수가 없어요. 계속 새로 배워합니다.
그러면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미래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아이는 어떤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고 뭐든지 상황에 접하면 이런 일이 생기면 이것을 할 줄 알고, 저런 일이 생기면 저런 일을 할 줄 아는 적응력을 뛰어나게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앞으로 뭐가 된다 이런 예측은 맞지 않습니다. 누구도 할 수도 없고 뭐가 되도 좋다. 농사 일이 생기면 농사 할 줄 알고, 용접 일이 생기면 용접할 줄 알고, 컴퓨터 할 일이 있으면 컴퓨터 하고 이렇게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떻게 해야 하냐면, 방청소도 할 줄 알고, 빨래도 할 줄 알고, 컴퓨터도 할 줄 알고 이렇게 너는 요것만 해라 공부만 해라 합격하면서 공부해라 이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산업화 시대에는 두가지만 익히면 되었습니다. 기술하고 지식을 익히면 평생 먹과 살았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딱 이 두가지 기술하고 지식을 익혔다 그러면 안정된 직장을 가졌는데, 지금은 지식과 기술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지식은 검색하면 됩니다. 남한테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릴때는 계산을 머리가 해야해서 주산왕, 부기왕, 암산왕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그냥 검색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기술은 어떻습니까? 기술도 지금 전부 자동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의사, 변호사 이런 것도 필요 없습니다. 왜냐면 인공지능이 검토하면 빨린 진단을 내립니다.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더 잘합니다. 변호도 인공지능이 법률적으로 더 잘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아는 기술이나 지식은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공부를 했는데 간호사가 간호 공부를 했는데, 간호일이 아니고 다른 직장 그 직장이 없다면 이 사람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것밖에 할 줄 몰라요.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어때요. 아무거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못을 칠일이 있으면 못치고, 농사지을 일이 있으면 농사 짓고, 청소할 일 있으면 청소도 하고 오히려 우리 같은 사람이 더 맞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아이를 키운다고 엄마가 힘들면 아이는 대부분 안됩니다.
왜 안될까요?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데, 힘들면
우선 첫째 인상을 쓰고 살아요. 그 아이들의 심리가 대부분 우울합니다.
두번째, 엄마가 힘들면 애 키우고 나서 애한테 기대가 큽니다. 그러면 애는 무거운 짐을 져야 합니다. 기가 안 살아요.
그러니까, 애를 어떻게 키워야 되나요?
아이 키우는데 힘들면 안됩니다. 재미 있어야 합니다. 그냥 먹는 밥에 한 숟가락 주고, 빨래 할때도 부려 먹고, 청소 할때도 부려 먹고 하면 됩니다. 놀러 갈때도 무거운 짐이 있으면 들으라 하고 이렇게 애 키우는데 힘이 안 들어야 합니다. 먹는데 숟가락 하나 넣어주고, 빨래할때 세탁기에 옷 하나 넣어줌 되고, 그리고 시켜먹고 하면 애가 어떠냐 하면 아이는 저절로 심리적 억압이 하나도 없고 그 다음 부모가 애 키우는데 힘이 안들면 애한테 아무런 기대를 안가져요? 그러면 아이는 다 잘됩니다.
그래서 애를 키우는 최고의 좋은 방법은 엄마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 키운다고 엄청나게 고생한 사람들은 대부분 다 불효자가 됩니다. 그래서 애 키우는데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아니요. 괜찮아! 괜찮아! 먹는 밥에 한 숟가락 올리면 되지. 괜찮아! 이렇게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애한테 부담을 줘도 안되고, 나도 부담을 느껴서는 안됩니다.
법륜스님은 괜찮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남아 있고, 앞으로 잘하면 그만큼 더 개선이 됩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잘해야 되는 것 만큼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지나간 것은 이미 끝이 난 것입니다.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절대로 막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재미있게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야단 치면 안됩니다.
때려도 안되고, 고함쳐도 안되고, 욕해도 안됩니다. 그럼 아이 심리가 위축이 됩니다.
그럼 아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하느냐? 아닙니다.
애 하자는 대로 하면 버릇이 나빠지고, 야단을 치면 심리가 위축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얘 하자는 대로 했다가 야단쳤다가 그러다 둘다 나쁘게 만들어요. 그런데 애 하자는 대로 할 필요도 없고, 야단도 치지 말고 그냥 밥 먹으러 하고 안 먹으면 내버려 두고 치워 버려야 합니다.
그럼, 엄마 밥줘 하면 그럼 먹어라 하면 됩니다. 차려죠 그러면 이미 지나갔다. 이러면 됩니다.
아까 먹으라 할 때 안 먹고 하면서 차려주면 안됩니다. 그러면 양쪽 다 안 좋습니다. 버릇도 나빠지고, 안 좋습니다. 예를 들어, 엄마 유학보내줘 하면 가라. 보내줘 하면 돈 없다. 이것은 웃으면서 해야 합니다. 누구 집에는 보내 주던데? 그러면 그 집가서 다 보내 달라고 그래라. 이렇게 이야기하면된다. 거 안보내 줄 거면서 왜 나를 낳았어? 하면…니 왜 그 집에서 태어나지 우리 집에서 태어났니! 이렇게 이야기 하면 된다. 이것 가지고 야단 칠 필요 없다. 그냥 웃으면서, 절대로 싸우면 안된다. 사춘기를 지나면 심리적 억압으로 힘이 세기 때문에 하극상이 일어 날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안 좋은 것입니다. 아이와 어른 간의 질서를 딱 잡아야 합니다.
오늘은 법륜스님의 지혜를 통해 4차 산업혁명시대에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 봤습니다.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하냐면, 엄마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며, 기술이나 지식의 습득보다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적응력을 키워주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막상 저 역시도 일상으로 돌아가서 주위의 아이들과 환경을 보면 이렇게 접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먼저 이것부터 시도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가 실수를 했을 때도 긍정의 말을 함으로써 아이가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